인플레이션 대비한다고 금 샀다가 반년 만에 깨달은 것

장바구니에서 시작된 불안

2026년 가을쯤이었습니다. 평소 만 원 안짝이면 충분하던 동네 마트 장바구니가 어느 날 1만 7천 원을 찍었습니다. 우유, 계란, 두부, 사과 몇 알. 영수증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같은 물건값이 1년 전과 너무 달라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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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rett_Hondow / pixabay

그때부터 인플레이션 대비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에서는 금을 사라고 하고, 어떤 채널은 달러 예금을, 또 어떤 글은 부동산 리츠를 추천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저는 그 주말에 바로 시중은행 골드뱅킹 계좌를 열고 200만 원어치 금을 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금값이 왜 오르는지도 제대로 모른 채 일단 사고 봤습니다.

반년 동안 겪은 세 번의 후회

첫 번째 후회는 수수료였습니다. 골드뱅킹은 살 때와 팔 때 각각 약 1% 안팎의 수수료가 붙고, 매매차익에는 배당소득세 약 15%가 따라붙습니다. 200만 원을 넣었는데 그냥 본전만 찾으려 해도 대략 2만 원 넘게 빠진다는 사실을 가입하고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적금 이자 챙겨보던 사람이 이런 비용 구조도 안 보고 들어갔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두 번째 후회는 변동성이었습니다. 산 직후 금값이 살짝 올라 들떴다가, 두 달 만에 6% 가까이 빠진 시기를 만났습니다.

인플레이션 헤지라더니 왜 떨어지지, 라는 생각에 밤마다 차트를 들여다봤습니다. 알고 보니 금은 물가뿐 아니라 달러 강세, 실질금리, 지정학적 이슈에 다 반응하는 자산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 한 줄짜리 논리로 사고 들어갈 물건이 아니었던 겁니다.

세 번째 후회는 더 컸습니다. 금을 사느라 빼둔 200만 원 때문에, 정작 그해 겨울 자동차 보험 갱신과 부모님 생신이 겹쳤을 때 마이너스 통장을 살짝 당겨 썼습니다. 연 6%대 대출이자를 내면서 금값 오르길 기다리는 제 모습을 보니, 이게 무슨 인플레이션 대비인가 싶었습니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 순서

반년쯤 지나 차분히 정리해보니, 저는 순서를 완전히 거꾸로 밟고 있었습니다. 진짜 인플레이션 대비는 화려한 자산을 사는 일이 아니라 지출의 구조를 먼저 손보는 일이었습니다.

통신비를 알뜰요금제로 바꿔서 매달 약 4만 원을 줄였고, 자동이체로 빠지던 잘 안 쓰는 구독 서비스 세 개를 정리해 월 3만 2천 원을 아꼈습니다. 1년이면 86만 원 정도가 그냥 굳습니다.

어떤 투자보다 확실한 수익률입니다.

그다음에야 자산 쪽을 봤습니다. 비상금은 파킹통장에 3개월치 생활비, 대략 600만 원을 넣어 연 3%대 이자를 받게 했습니다.

그 위에 적립식으로 코스피200 ETF와 미국 S&P500 ETF에 매달 30만 원씩 나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금은 다 팔지는 않고, 전체 자산의 5% 정도만 유지하기로 비중을 줄였습니다.

인플레이션 대비라는 게 한 자산에 몰빵하는 게 아니라, 여러 바구니에 조금씩 나눠 담는 일이라는 걸 책에서 백 번 읽는 것보다 통장 잔고로 한 번 겪고 나서야 이해했습니다.

지금 다시 시작한다면

혹시 지금 저처럼 장바구니 영수증 보고 마음이 급해진 분이 있다면, 자산부터 사기 전에 지출 명세서를 먼저 펼쳐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새는 돈 5만 원을 막는 것이 금 200만 원어치 사는 것보다 훨씬 확실한 방어가 됩니다. 인플레이션은 결국 내 구매력을 갉아먹는 현상이고, 구매력은 자산 가격뿐 아니라 매달의 현금흐름에서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사기로 마음먹었다면 수수료, 세금, 환금성 이 세 가지는 반드시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걸 200만 원짜리 수업료를 내고 배웠습니다. 인플레이션 대비라는 말이 마케팅 문구로 너무 쉽게 쓰이는 시대일수록, 한 박자 늦게 들어가는 사람이 오히려 덜 잃는다는 것을 요즘 자주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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