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에 전세 계약을 했다. 당시 공인중개사는 “지금이 들어올 적기”라고 했고, 나도 그 말을 믿었다. 계약금 2천만 원을 내고 2년 전세로 들어갔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지금, 같은 건물 같은 평수가 전세로 1천8백만 원에 나와 있다. 처음엔 시장 변동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내가 놓친 게 훨씬 많았다.
계약 당시 “시장이 바닥”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지금이 바닥입니다. 더 내려갈 수 없습니다.” 나도 그 말에 설득됐다. 당시 뉴스를 보면 금리 인하 얘기가 나오고 있었고, 시장 전문가들도 “하반기부터 살 만해진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약을 밀어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틀렸다. 공인중개사가 보는 “바닥”과 실제 시장의 바닥은 다르다. 중개사는 매물을 빨리 내보내야 수수료를 받는다. 그들에게 “지금이 적기”는 마케팅 문구일 뿐이다. 내가 계약한 11월에는 금리가 아직 약 3%였다. 지금은 약 2%다. 금리가 약 0% 내려간 것만으로도 전세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전세 계약서의 특약사항”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계약서를 받았을 때 중개사는 “특약사항은 표준형이니까 괜찮습니다”라고 넘어갔다. 나도 피곤했고, 빨리 이사 가고 싶었다. 그래서 대충 훑고 도장을 찍었다.
3개월 뒤 전월세 신고를 하러 갔을 때 깨달았다. 내 계약서에는 “임차인 부담 수선비 범위: 300만 원”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벽지 뜯김, 창문 손상, 욕실 타일 깨짐 같은 것들이 300만 원까지는 내가 책임진다는 뜻이었다. 일반적인 전세 계약서는 이 수치가 10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다. 나는 그걸 모르고 사인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계약서의 “기한 내 보증금 반환” 항목을 읽어보니, 계약 만료 후 보증금을 반환하기까지 “최대 45일”이라고 돼 있었다. 요즘 시장에서는 보통 30일 이내다. 나중에 이사 나갈 때 보증금이 늦게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매매가 하락세”를 읽지 않고 전세 계약했다
전세는 결국 집주인의 자산 가치와 연결돼 있다. 집주인이 집을 팔 때 손해를 보면, 전세금을 못 돌려줄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런데 나는 계약할 당시 그 건물의 매매가 추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계약 당시 그 건물 같은 평수 매매가는 약 4억 5천만 원대였다. 지금은 4억 2천만 원대다. 3개월 새 3천만 원이 떨어졌다. 만약 집주인이 이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전세금 2억 원을 돌려줄 때 자기 돈을 깎아서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인중개사에게 물어봤더니 “전세는 보증보험이 있으니까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맞다, 전월세보증금보험이 있다. 하지만 그 보험도 한계가 있다. 보험료를 내야 하고, 청구 과정도 복잡하다. 무엇보다 보험금이 전액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
계약을 다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은 1년 6개월 동안 할 수 있는 게 있다. 먼저 집주인과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다. 전세 만료 때 보증금을 돌려받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나중에 보증금 반환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두 번째는 전세금 보증보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다. 내 보험이 어디까지 커버하는지, 청구 절차는 뭔지 미리 알아두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계약 만료 3개월 전부터 다음 거주지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증금이 늦게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미리 준비하는 게 낫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시장 상황도 더 명확해질 것 같다.
부동산 시장은 전문가도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건물의 매매가 추이를 확인하고, 중개사의 말을 절반만 믿는 것. 그게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